'폭로'라는 제목이나 '신출내기 변호인과 은밀한 피고인의 진실게임'이라는 한 줄의 설명만 봐서는 썩 기대감이 커지는 영화는 아니다. 워낙 이런 부류의 법정 스릴러가 많았기 때문. 하지만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 곧바로 생각이 달라진다. 대작들 사이 규모는 작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은 강하고 큰 영화 '폭로'를 마주할 수 있어 반갑다.
'폭로'(감독 홍용호)는 본드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린 의뢰인의 무혐의를 입증하는 동시에 진범을 찾으려는 변호인과 범행의 시인과 부인을 거듭하는 피고인, 현장에 있던 제3의 존재로 인해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의 실체를 쫓는 범죄 스릴러다.
영화는 코와 입이 본드로 막힌 채 잔혹하게 죽어가는 남성을 지켜보는 한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해당 사건의 용의자는 피해자의 아내 성윤아(유다인 분). 살해 계획이 적힌 다이어리와 남편 앞으로 든 보험 등 증거뿐만 아니라 윤아의 자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사 이정민(강민혁)은 윤아를 설득하고, 윤아 역시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진술을 번복한다. 그렇게 사건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폭로'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홍용호 감독은 20여 년간 법조계에서 활동한 현직 변호사이자, 단편영화 '배심원들' 연출과 각본, '증인', '침묵'을 각색한 한국영화계 대표적인 법정물 전문 스토리텔러다. '폭로'는 홍용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각본과 현장 경험을 살린 사실적인 연출을 인정받아 2023 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스토리상을 수상했다.
홍용호 감독은 경험을 바탕으로 디테일과 현실감을 제대로 살린 법정신에 영화적인 재미까지 더하며 몰입도와 긴장감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기존 법정물과는 달리 담담하지만, 묵직한 힘이 있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감정의 과잉 하나 없는, 담백한 색채가 오히려 후반 반전과 맞물리면서 더욱 짙은 여운을 남긴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제1의 용의자인 윤아를 연기한 유다인은 명불허전 연기력으로 극에 깊이를 더한다. 대사나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인물이라 연기하기 어려웠다던 유다인은 탄탄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캐릭터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을 이끌었다.
이번 '폭로'를 통해 변호사 캐릭터에 처음 도전한 강민혁은 맞춤옷을 입은 듯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를 한층 깊어진 연기로 표현해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엄청난 대사량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법정신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변호사로서 절제된 감정선을 안정적으로 담아내 캐릭터에 힘을 불어넣는다. 강민혁의 새 얼굴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다.
여기에 공상아가 부장판사 최은주 역을 맡아 엄청난 연기 내공을 폭발시킨다. 최은주는 미국 연방판사인 데보라 배츠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데보라 배츠는 1972년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1979년부터 연방검사 생활을 시작해 1994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연방판사로 취임했다.
'폭로'의 최은주는 이정민에게 "피고인 말을 정말 다 믿으세요?" 등의 의심스러운 질문을 남기며 변호인 측의 증인으로 재판에 서게 되며 반전을 가져온다. 반전의 전후 변화가 중요한 인물인 것. 이에 공상아는 차분한 말투와 표정뿐만 아니라 외적 분위기로 이를 구분하며 캐릭터 자체로 존재했다. 그렇기에 후반 공상아가 보여준 놀라운 감정 열연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 스릴과 재미를 동시에 전하는 스토리, 배우들의 쫄깃한 연기 합까지, 참 잘 만든 영화 '폭로'다.
9월 20일 개봉. 러닝타임 101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