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박서준·박보영 뭉친 '콘크리트 유토피아', 올여름 최고 수작
엄태화 감독의 디테일·탁월한 연출력 빛났다…재미·메시지 다 잡은 웰메이드
배우 이병헌의 놀라운 연기를 보고 싶다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강력 추천하다. 원래도 '연기 잘하는 배우'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병헌이지만 이번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선 그야말로 미친 연기로 극을 완전히 압도한다. 이병헌을 필두로 배우들의 빈틈없는 열연이 130분 동안 숨 쉴 틈 없이 펼쳐진다. 여기에 엄태화 감독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출력까지 더해져 올여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수작이 탄생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2014년 연재 이후 호평을 모았던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이 원작이다.
영화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 개발과 함께 아파트에 점차 익숙해져 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은 다큐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어 갑작스러운 대지진으로 서울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다. 그리고 밖을 내다보는 민성(박서준)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화면에는 모든 것이 무너진 가운데 유일하게 그대로 서 있는 황궁 아파트 103동이 담긴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외부 생존자들이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면서 사건이 커지게 된다.
대지진으로 인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 속 황궁 아파트는 모두의 유토피아다. 위협을 느낀 입주민들은 '희생정신'을 가진 영탁(이병헌)을 새로운 주민 대표로 세우고, 외부인들을 완전히 몰아낸다. 그리고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는 영탁과 주민들은 외부인 출입금지, 기여도에 따라 차등 배급 등 주민 수칙을 세운다. 하지만 주민들과 외부인들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더없이 안전할 것 같았던 황궁 아파트가 위태로워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앞선 재난영화들과 다른 점은 재난의 과정과 극복의 순간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이후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관계성과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이자 안식처가 세상의 유일한 피난처가 된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다양한 선택과 갈등을 팽팽한 긴장감과 블랙코미디적인 유머로 그려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 중심엔 이병헌이 연기한 영탁이 있다. 얼굴에 흑칠하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 영탁은 어느새 주민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병헌은 영탁의 소름 끼치는 변화를 완벽하게 소화해내 관객들을 극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그야말로 '이병헌 연기차력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병헌은 매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존재감과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준다.
돌변하는 눈빛과 표정 만으로도 한순간에 장르를 스릴러로 만들어버리고, 악에 받쳐 소리를 내지를 때는 공포감까지 느끼게 된다. 몸 사리지 않는 폭풍 열연은 물론이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병헌이라 놀라고 또 놀라게 된다. '역시 이병헌'이고, 그래서 꼭 봐야 할 이병헌이며 앞으로도 더 보고 싶은 이병헌의 연기다.
민성 역 박서준과 명화 역 박보영 역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박서준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서히 변해가는 민성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민성의 아내이자 간호사인 명화는 이런 민성을 걱정하며 끝까지 변하지 않는 신념과 인간애를 보여준다. 박보영은 진정성 넘치는 얼굴과 눈빛으로 온전히 명화가 되어 제대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여기에 김선영, 김도윤, 박지후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탄탄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故 나철의 열연과 엄태화 감독의 동생인 배우 엄태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또 다른 강점은 리얼함이다. 재난 이후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담아내겠다는 목표 아래 엄태화 감독은 무려 5개월의 제작 기간을 들여 실제 아파트 3층 규모의 초대형 오픈 세트를 만들었다. 또 2년여의 시간을 들인 CG 작업을 통해 대지진 이후 서울과 황궁 아파트의 모습을 완성해 생생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놀라운 건 폭염의 날씨에 한겨울 속 극한의 생존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다. 촬영 비하인드를 모른다면, 그 어떤 의심 없이 한겨울에 촬영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놀라운 디테일과 열정이 돋보인다. 여기에 감정의 깊이감을 더하는 음악까지, 무엇 하나 빠짐이 없다. 올여름 최고의 수작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8월 9일 개봉. 러닝타임 130분. 15세 이상 관람가.
https://www.joynews24.com/view/1619095
2023.08.01 - [영화] - "130분 순삭, 연출·연기 완벽" '콘크리트 유토피아', 꼭 봐야할 이유